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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말인 너 자신을 알라는 매우 유명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뜻하는 것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그 의미에 대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게 설명되어 있다. 


너 자신을 알라가 뜻하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IQ 100에 일반적인 초중고 대학교 교육을 받은 보통의 사람의 지력은 인간이 지금까지 발견한 지식의 0.1%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은 지금까지 우주의 극히 일부 원리만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인간이 발견한 지식들의 모두 틀렸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본다면 한 인간은 정말 무식한 존재이다. 아주 똑똑한 사람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별반 차이는 없다.


이렇게 짧은 지식으로 인간이 생존한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어떤 사람은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분노하고 목숨을 걸기도 하지만, 그렇게 짧은 지식과 지능으로 정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수 있을까? 자신은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높은 지력을 가진 존재가 볼때는 전혀 정의롭지도 않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뜻하는 것이 지력의 관점 뿐만아니라 인식의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은 무의식적인 의지에 따라 어떤 일이나 말을 한다. 무의식적인 의지는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명한 자는 그 의지를 인식하고 행동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시위를 할 때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그 시위가 명분이 있고 사회에도 좋은 일이며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위를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그 시위가 전혀 정의롭지 않고 사회에 피해를 주면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인 생존, 종족번식의 본능이 인간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생존 앞에서 도덕, 정의, 명분 등 모든 것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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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et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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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8.09.09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소크라테스 명언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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